[영림원CEO포럼] 일본 강소기업의 4가지 키워드 ‘DEEP(이중성·확장성·전문성·영속성)’
[영림원CEO포럼] 일본 강소기업의 4가지 키워드 ‘DEEP(이중성·확장성·전문성·영속성)’
  • 박시현 기자
  • 승인 2023.09.11 0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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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헌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 186회 영림원CEO포럼에서 강연
오태헌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
오태헌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

[아이티비즈 박시현 기자] 오태헌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가 7일, 186회 영림원CEO포럼에서 ‘일본 강소기업의 지혜, DEEP 경영’을 주제로 강연했다. 오태헌 교수는 “왜 일본에는 100년이 지나도 직원이 수십명에 불과한 강소기업이 많은 걸까?, 그 비결을 찾으려 15년간 작지만 강한 기업 100여곳(50여곳은 직접 방문해 인터뷰)을 연구했는데 그 해답은 ‘DEEP 경영’이었다”고 밝혔다.

DEEP 경영은 기업의 모든 역량을 그 분야의 진화를 위해 오롯이 쏟아붓는 ‘깊은 경영’이며, 그 4가지 키워드는 ▲D(Duplicity, 이중성) ▲E(Expandability, 확장성) ▲E(Expertise, 전문성) ▲P(Permanency, 영속성)이다. 다음은 강연 내용

◆이중성: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라 = 일본의 강소기업은 이율배반적인 두 요소를 가졌다.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 즉 ‘전통+혁신’의 절묘한 균형이 지속 가능한 진화를 이끈 비결이었다.

이중성의 키워드는 ‘시니세(老鋪)’이다. 시니세는 몇 대를 이어오며 번성해 유명 또는 오랫동안 신용을 이어가면서 가업을 이어가는 점포를 뜻한다. 전통의 계승과 시대에 맞는 혁신을 항상적으로 실천한 것이 시니세의 비결이다. 전통을 잘 지키면서 성장을 이어가는 기업이라면 혁신의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 시니세가 많은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먼저 다음 세대로 가업을 이어가며 지속하겠다는 강한 의지에서 탄생한 가족제도의 전통 때문이다. 이 가족제도에는 혈연 관계를 넘어 인재를 등용하는 것도 포함된다. 사위가 CEO를 맡는 것이 그 예다.

또 에도 시대부터 축적돼온 상도덕(공익성, 윤리, 도덕)의 계승으로 ‘기업은 사회 공공의 것’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실제로 일본 강소기업은 지역사회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리고 일본은 중국이나 한국과 달리 과거제도가 없어 신분상승이 절대 불가하고 부모의 직업을 대물림해온 것도 시니세가 많은 이유다.

<이중성 사례 기업: 우루시 사카모토>

우루시 사카모토는 쇠퇴하던 옻칠 기술을 되살려 세계적 명품을 만드는 기업이다. 1970년에 창업한 우루시 사카모토는 칠기 및 옻칠 가공 공예품을 생산하다가 1970년대 후반 3대 사장 사카모토 아사오가 취임했을 당시 일본 전통예 시장의 급속한 쇠퇴로 위기에 직면했다. 서구화와 대량 생산 확대로 전통 공예품의 구입이 감소한 것이다. 근근이 사업을 이어가던 사카모토 아사오 사장은 어느 날, 답례품으로 받은 칠기가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광경을 목격하고 “이대로 칠기 만드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를 고심했다. 그런데 국립과학발물관에서 “전통공업 전시품을 찾고 있는데 귀사가 만들고 있는 칠기를 빌려 달라”는 전화를 받고 옻칠=전통공예라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아이즈(會津) 칠기 가공 기술을 공업제품에 접목시켜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다. 하지만 공업제품으로 생산하려면 가격 인하와 대량 생산이 필수였는데 기존 제작 방식으로는 불가능했다. 또 칠기는 공예품이라는 일본의 강한 인식 때문에 고객 확보에 차질이 빚어졌다.

우루시 사카모토는 우여곡절 끝에 미 파커사의 데스크세트 2천개를 수주했다. 그러나 얼룩이 있다는 이유로 모두 반품됐다. 칠기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얼룩이 공에품에서는 독창성이었지만 공업제품의 경우 불량이었다. 사카모토 아사오 사장은 전통적 옻칠 방식을 스프레이를 사용한 분사 방식으로 전환해 불량률을 줄이고 생산성을 늘렸다. 외국 유명업체들이 제품의 브랜드 파워를 높이는 기술로 우루시 사카모토의 옻칠에 주목했다. 우루시 사카모토는 옻칠 가공으로 쌓아 온 정밀 코팅 기술을 자동차, 항공기 퍼스크 클래스 좌석의 도장 작업에 접목했다.

사카모토 아사오 사장은 “전통을 남기고 싶으니까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이다. 다만 좋은 것과 자신이 소유해서 사용하고 싶은 것과는 다르다. 옻칠한 제품 역시 사용하고 싶은 것이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분야에 적극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루시 사카모토의 성공은 작은 발견과 깨달음에서 비롯됐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용기가 가능성을 높이는 시작이다.

확장성: 분명한 지향점을 가지고 확장하라 = 기업이 강하다는 것은 매출, 종업원수, 이익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기업이다. 경영인은 기업을 운영하면서 시장이나 사업 영역의 확장을 고민한다.

일본의 강소기업은 그동안 해온 것을 어떻게 잘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생뚱맞은 것은 하지 않는다. 가고자 하는 방향이 분명하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쇼쿠닌(職人)’이다. 우리 말로 장인이다. 쇼쿠닌은 시험봐서 따는 자격증이 아니라 손님이, 지역사회가 인정하는 것이다.

쇼쿠닌은 에도시대의 사농공상에서 공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공은 산업혁명 이전까지 생산활동의 중심 역할을 했으며 기술은 주로 도제제도에 의해 계승됐다. 일본에서는 기술인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데 권력층의 무사들이 직접 노동에 참여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최측근이었던 가토 기요마사는 축성과 치수의 전문가였다. 또 쇼쿠닌은 세금 면제 등 영주의 지원으로 성장했으며, 혈연을 뛰어넘어 양자로서 가업을 계승해 나갔다, 이렇게 우대를 받으며 선망의 대상이 된 쇼쿠닌은 더 좋은 물건을 만들고자 하는 정신을 갖게 됐으며, 이 더 좋은 물건 만들기(모노즈쿠리)는 일본 제조업의 핵심이 됐다.

<확장성 사례 기업: 노사쿠>

노사쿠는 주물 기업으로, 3D 업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한 케이스다. 4대 사장 가츠지 노사쿠는 사위로서 가업을 이었는데 1985년 결혼하면서 주물 제조를 시작했다. 하루 18시간씩 18년동안 현장에서 기술을 습득했다. 어느 날 공장 견학을 온 학부모가 아이에게 “너도 공부 안하면 저런 일을 하게 될거야”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주물 제조는 덥고 습한 작업 환경, 1000도씨 이상 고온의 쇳물, 낮은 임금으로 대표적인 기피 직종이었다.

가츠지 노사쿠 사장은 생산체제의 변화를 시도해 기존 하청생산에서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바꾸었다. 특별한 주문만 받으면서 품질이 높아지고 수익구조도 개선됐다. 기술자의 급여 인상에다 주물 장인으로 인정받으면서 젊은 대졸 출신들의 지원이 증가했다. 일에 대한 자긍심을 높인 셈이다.

노사쿠는 자체 브랜드의 개발에 나섰다. 소재 특성에 집중해 먼저 부딪힐 때 청명한 소리가 나는 놋쇠의 특성을 살려 놋쇠 풍경을 개발해 첫 해에 판매량 3만개를 돌파했다.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다음 소재로 주석에 주목했다. 주석은 강한 향균 작용으로 술이나 음식의 맛을 높이고 보관 기간을 연장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유연한 성질로 식기로 만들면 모양이 찌그러지고, 자르거나 깎는 가공이 곤란하다.

노사쿠는 단점도 장점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구부러지는 건 구부려서 사용하면 된다”며 99.9% 주석으로 만든 주물 용기 ‘카고(KAGO)’를 만들었다. 카고는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변형이 강하고, 항균 작용이 강해 유아용품으로도 인기를 끌었다.

노사쿠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국내를 넘어 해외로 진출했다. 2010년 프랑스 국제 인테리어 박람회 ‘메종 에 오브제’에 참여해, 카고 제품으로 관심을 끌긴 했으나 신규 계약에는 실패했다. 일본에서 판매한 상품을 그대로 내보인 것이 문제였다. 해외 마케팅 경험이 없었던 탓이다. 그래서 프랑스 유명 디자이너 실비 아마르와 협업해 ‘실비 라인’ 시리즈를 론칭했다. 프랑스 호텔, 레스토랑 등에 납품고 해외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2014년에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매장을 오픈했다.

◆전문성: 자격증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것 = 사회가 인정하는 전문가, 동종 업계에서 인정하는 전문가는 남과 다른 차별성을 갖고 있다. 일본에서 차별화를 설명하는 단어는 ‘고다와리’다. 우리 말로 바꾸기가 애매한데 사전적인 의미는 특정한 기호에 대한 집착, 유별나게 좋아하는 것, 얽매이는 것 같지만 성급하지 않고 대충 끝내지 않는 까다로움이다.

고다와리 경영이란 절대 양보할 수도 타협할 수도 없는 기업 고유의 강한 생각을 경영에 반영하는 것이다. 생존을 넘어 진화하며 성장하는 일본 강소기업에는 틀림없이 ‘~ 고다와리’가 있다. 이를테면 소재에 대한 고다와리, 연구에 대한 고다와리, 혁신에 대한 고다와리, 사람에 대한 고다와리, 시장에 대한 고다와리, 제조방법에 대한 고다와리, 서비스방법에 대한 고다와리 등이다.

<전문성 사례 기업: 기우치주조>

기우치주조는 ‘히타치노 네스트’라는 맥주 브랜드로 2017년 미국 맥주 시장에서 약 136만병을 판매, 시장점유율 약 20% 기록했다.

기우치주조는 1823년부터 청주만을 생산하고 맥주 제조 경험이 전무했다. 1990년대 초 일본에서 수제 맥주 붐의 영향으로 청주 수요가 감소하면서 맥주 사업을 시작했는데 국내 맥주 회사의 견제로 제조법의 확보에 실패했다. 미국인 전문가를 초빙해 1995년 ‘히타치노 네스트’를 출시했다. 그런데 수제 맥주 붐이 사라지면서 수많은 기업이 파산했다. 기우치주조 역시 판매량 급감으로 위기에 직면했다. 고민하던 기우치 사장은 해외 시장 진출을 결정했다. 1990년대 미국에서는 페일 에일, 엠버 에일, 페일 라거 등 유럽 국가 스타일의 제품이 주류였다. 기우치주조는 미국 전문가에게 전수받은 기술을 토대로 아메리칸 엠버 에일을 생산했다. 1997년 10월 오사카 세계 맥주 콘테스트에서 다크 부문 1위를 수상했다.

기우치 오토소 사장은 “당시의 히타치노 네스트 맥주는 유럽에서 팔리고 있는 맥주의 복사품일 뿐이었다.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수제 맥주 붐이 사라지더라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들은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독창성이 필요했다”며 모방이 아닌 모험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해서 만든 맥주가 적미를 사용해 옅은 핑크 빛에 과일 향이 감도는 독특한 맛의 ‘레드 라이스 에일’, 일본 원종 보리로 만든 ‘닛포니아’, 이바라기 지역의 토종 귤을 사용한 ‘다이다이 에일’, 유자향을 더한 ‘세존 드 제폰’이다.

기우치주조는 원래 잘 하던 전통주 생산도 지속하고 있다. 기우치 오토소 사장은 “희소가치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닌, 절대 잊혀지지 않는 최고의 술이 가우치주조의 최종 목표다”라고 밝혔다.

기업이 유행을 뛰어넘어 진화하는 것은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하며, 차별화 하려면 모방이 아닌 모험이 필요하다.

◆영속성: 기업으로 태어났으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 영속성은 일본 강소기업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이를 설명하는 적합한 단어가 ‘노렌(暖簾)’이다. 노렌은 처마 끝에 붙여 햇빛을 막는 것으로 쓰는 천 또는 방의 칸막이에 드리우는 짧은 천이다. 일본에서는 이 노렌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더러우면 맛집으로 인식된다.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다.

노렌은 일본 회계학 용어로, 기업의 무형 자산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단어다. 노렌이 들어가는 관용구가 많은데 노렌에 상처를 입다는 것은 스캔들 등의 원인으로 신용 또는 명성에 손상을 입는 것이며, 노렌을 접다는 것은 폐업하는 것이며, 노렌을 나누는 것은 동일한 상호의 점포를 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일본 유명 소바점의 창업자가 2015년 타계하면서 100명 가까운 제자에게 로열티 없이 노렌을 내어준 적이 있다. 일본 사회에서 노렌을 내주는 것은 ‘장사의 영혼’을 상속하는 행위다.

오사카에서 일본의 대표 기업이 많이 나왔다. 오사카 장수기업들의 모임인 ‘오사카 노렌 백년회’의 홈페이지 첫 페이지에는 “영속은 기업의 진수다”라고 써있다. 기업은 지속하는 것이 사명이며 목적이며, 기업으로 태어났으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게 오사카 노렌 백년회가 내건 노렌 상법의 핵심이다.

<영속성 사례 기업: 스즈키 양말>

스즈키 양말은 업계 불황에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1958년 어린이 전용 양말 제조기업으로 출발한 스즈키 양말은 1987년 축구용 스타킹의 OEM 생산을 시작해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스타킹을 수주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다가 쌀겨 성분이 들어간 섬유로 제작한 쌀겨 양말의 개발에 들어갔다.

스즈키 양말이 쌀겨 양말을 만들게 된 것은 현미 정미 후 버려지는 쌀겨가 아깝다고 생각한 스즈키 카즈오 사장이 초등학교 시절에 쌀겨를 이용해 교실 바닥을 청소하던 기억에서 비롯됐다. 쌀겨를 양말에 적용하면 발도 매끈해질 것이라는 아이디어에 착안해 쌀겨 양말의 개발에 착수했다. 여러 번의 실패를 거쳐 2006년 쌀겨 양말 ‘걸어다니는 쌀겨주머니’를 출시했다. 쌀겨 양말은 2016년 기준 누적 약 30만 켤레 판매됐다. 스즈키 양말은 끊임없는 혁신으로 최근에는 발 부종이 있는 고령층을 겨냥해 조이지 않는 양말을 개발했다.

스즈키 카즈오 사장은 “회사가 잘 나갈 때야말로 미래의 새로운 방향성을 찾아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바꾸지 않으면서 변한다” = 일본 강소기업의 요소는 무엇인가?를 연구하면서 찾은 말이 ‘불역유행(不易流行)’이다. ’바꾸지 않으면서 변한다‘는 뜻이다. 변함없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시대에 상황에 맞게 알맞게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중성, 확장성, 전문성, 영속성 등 4가지 요소가 포함된다.

’바꾸지 않으면서 변하는’ 경영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목표(매출 등)가 아닌 왜 경영을 하는지 그 목적이 있어야 한다. 둘째,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것보다는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는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셋째, 성장(몸집)이 아닌 발전하는 기업이어야 한다.

영림원CEO포럼

영림원 CEO포럼은 2005년 10월 첫 회를 시작하여 매달 개최되는 조찬 포럼으로, 중견 중소기업 CEO에게 필요한 경영, 경제, IT, 인문학 등을 주제로 해당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강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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