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림원CEO포럼] 실패한 역사적 인물들이 ‘게임이론’을 알았다면?
[영림원CEO포럼] 실패한 역사적 인물들이 ‘게임이론’을 알았다면?
  • 박시현 기자
  • 승인 2023.11.0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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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구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188회 영림원CEO포럼에서 강연
한순구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한순구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아이티비즈 박시현 기자] ”게임이론은 인간이 겉으로는 사회를 위하는 척하지만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한다는 전제 하에 상대방의 행동을 미리 예측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순구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가 2일, 188회 영림원CEO포럼에서 ‘게임이론과 전략적 사고’를 주제로 강연했다. 게임이론의 연구학자인 한순구 교수는 이번 강연에서 이솝우화의 사자와 농부 이야기를 통해 남북관계를 분석하고, 고르바초프가 상대방의 ‘또라이 전략’으로 소련의 멸망을 막지 못했던 전략적 실패를 살펴보는 등 게임이론을 현실에 적용한 여러 사례들을 소개했다. 다음은 강연 내용

◆”사람들은 과거의 은혜는 쉽게 잊지만 미래의 이익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 한순구의 <그들은 왜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했나>는 게임이론을 역사에 적용한 책이다. 전쟁에서 패배했거나 국가 운영에서 큰 실패를 경험했던 역사적 인물들이 만일 게임이론을 알았다면 어떠했을까를 분석했다.

먼저, 항우와 유방이다. 진나라는 춘추전국시대를 끝낸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 국가이다. 진시황이 죽자 과거 정복한 여섯 개의 나라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초나라의 항우는 반란을 일으킨 나라의 연합군을 이끌고 진나라를 멸망시켰다. 항우는 자신을 따라 진나라와 싸운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 연나라, 제나라 등 여섯 나라 사람들에게 각자의 나라를 돌려주었다. 여섯 나라 사람들에게 항우는 고맙기 그지 없는 은인이었다.

그런데 항우에게 반하여 군사를 일으킨 자가 있었으니 바로 유방이었다. 항우와 유방의 전쟁은 4년 동안 벌어지다가 결국 유방의 승리로 끝나고, 중국의 두 번째 통일국가 한나라가 세워졌다.

왜 항우는 유방을 이기지 못했을까? 항우 덕분에 원래의 땅을 돌려받은 나라들이 항우 편을 들지 않고 심지어 반기를 들었다. 유방과 싸운 사람은 오직 항우 뿐이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우리나라 교육계에서도 이런 현상이 관철된다. 이를테면 대다수 대학이 4년마다 총장 선거를 하며, 당선된 총장이 학장들을 임명한다. 그런데 그 학장임명권 때문에 총장은 많은 교수로부터 미움을 받아 다음 선거에서 총장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러 명의 교수가 학장을 시켜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지지한다. 그런데 단과대학 학장 자리는 하나뿐이다. 임명되지 못한 사람은 약속을 저버린 총장의 적으로 돌아서고 만다. 약속대로 임명된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세운 공이 학장급이 아니라 더 높은 부총장이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고마운 마음을 갖기는커녕 서운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아마 마찬가지로 항우에게 고마워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영토를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 더 이상 항우에게 아쉬운 게 없었을 것이다. 항우가 진나라를 물리치고 나를 왕으로 만들어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항우를 위해 목숨 걸고 유방과 싸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혹시 내가 유방과 싸워 이겼을 때 항우가 내게 더 많은 땅과 돈을 준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괴거에 베푼 은혜에 보답하라면서 매번 전쟁에 끌어들인다면 그건 곤란한 일이다.

사람은 무엇에 반응하는가? 당근인가 채찍인가, 과거의 은혜인가 미래의 이익인가. 모든 의사결정은 이기적 개인들이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성립된다는 ‘비협조적 게임’ 이론의 논리에 따르면 사람들은 과거의 은혜는 쉽게 잊지만 미래의 이익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므로 너무 쉽게, 너무 빨리 은혜를 베풀면 안된다.

내가 승진시켜준 부하가 나를 따르는 것은 승진시켜준 은혜에 감사해서가 아니라 다시한번 승진시켜 줄 수 있는 내 힘을 따르는 것이다. 이 말을 기억하면 항우와 같은 비참한 운명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한신의 토사구팽…”사냥개가 살 방법은 토끼를 열심히 잡지 않는 것“ = 항우는 너무나 빨리, 너무 쉽게 영토를 배분함으로써 자신의 유리한 전략적 위치를 포기해 버렸다.

반면 항우와 싸워 이기고 중국 전체를 차지한 유방은 시간을 오래 끌며 논공행상을 시행함으로써 자신의 유리한 지위를 충분히 이용했다. 유방이 이렇게 한 것은 책사인 장량의 조언 덕분이었다. 유방은 공신들이 역적 모의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장량에게 그 해결책을 물었다. 장량은 유방이 가장 미워하는 부하 장수인 옹치에게 큰 상을 내리라고 했다. 유방이 그 말에 따라 옹치에게 좋은 영토를 주자 다른 부하 장수들은 옹치보다 더 좋은 영토를 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기다렸다. 유방은 게임이론에 뛰어난 사람이었다. 유방은 천하를 얻는 순간까지는 능력에 따라 인재를 썼지만 천하를 얻어 지켜야 하는 상황이 되지 능력보다는 충성심 강한 사람을 중용했다.

한신은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는데 큰 공을 세웠지만 토사구팽 당한 인물이다. 토사구팽은 토끼를 잡는데 이용하던 개가 토끼를 다 잡고 나니 필요 없어져 버림받는다는 뜻이다. 게임이론 대로라면 사냥개가 살 방법은 토끼를 열심히 잡지 않는 것이다. 다 잡고 나면 농부에게 좋은 대접을 받을 것이라는 몽상을 해서는 안된다. 토끼가 사라지면 사냥개의 존재 의미가 없어지니 농부가 항상 염려할 만큼의 토끼는 남겨 두어야 한다.

한신이 전투에서 이기되 결정적 타격은 주지 않고 항우를 계속 살려두었다면 항우가 두려운 유방은 항우를 이길 유일한 장군인 한신을 곁에 두고 우대했을 것이다. 한신에게는 이 전략이 최선이었다.

한신과는 상반되게 행동한 인물이 있다. 진나라의 장수 왕전이다. 왕전은 군인으로서는 뛰어났지만 부하의 돈을 뺏거나 여자 문제 등으로 인격은 빵점이라는 소문이 퍼지도록 처신했다. 진시황은 이런 왕전을 자신을 위협할 만만 존재로 보지 않았다. 왕전은 상관에게 위협이 안되도록 스스로 망친 셈이다.

◆”명성과 힘을 가졌을 때 더욱 조심해야 한다“ = 일본의 스모는 1년에 여섯번, 홀수 달에 열리며 15일간 진행된다. 스모 선수는 하루에 한번씩 경기를 치르며, 모두 15번의 경기에서 가장 많이 이긴 선수가 우승을 차지한다. 스모는 일본인 뿐만 아니라 전세계인이 다한다. 2000년대 들어 독보적으로 잘한 선수가 몽골 출신의 아사쇼류이다. 아사소류는 15승 0패로 우승한 적이 많았다. 일본인들은 이 선수에 막혀 우승의 꿈을 꿀 수 없었다. 그런데 아사소류의 성적이 갑자기 뚝 떨어졌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스모 경기는 부상이 잦다. 아사소류의 전성기 때 상대방 선수들은 부상을 당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금방 쓰러져 져주었다. 그런데 아사소류가 나이가 들고 힘이 빠지면서 예전만 못하다는 소문이 퍼지자 선수들의 마음이 달라졌다. 아사소류를 한번 이겨보자고 죽기살기로 덤벼 들었다. 결국 아사소류가 천하무적이었던 것은 ‘명성’ 때문이었다.

이 얘기를 꺼낸 것은 일본의 첫 무신정권이었던 가마쿠라 막부가 순식간에 멸망한 사례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가마쿠라 막부는 태풍의 도움을 받기는 했으나 고려를 정벌한 몽골의 침입을 두 번이나 막아낼 정도로 강력했다. 하지만 반란군의 아주 작은 성 하나를 함락시키지 못해 하루아침에 멸망했다.

일본은 사무라이라는 무사집단인 가마쿠라 막부가 지배 세력으로 들어서기 전에는 왕족과 귀족이 다스렸다. 가마쿠라 막부가 세워지자 당시 천황이었던 고다이고는 전국의 무사들에게 가마쿠라 막부를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이 명령을 듣고 지금의 오사카 지역에 살던 구스노키라는 인물이 2천명의 군사로 수십만의 막부군에 저항해 반란을 일으켰다. 구스노키 군은 들판에서 싸우다 지자 성안으로 들어갔다. 가마쿠라 막부는 5만명의 군사를 보내 이 성을 100일간 공격했지만 함락시키지 못했다. 가마쿠라 군이 여기서 후퇴하고 100일이 지나 가마쿠라 막부는 멸망하고 말았다. 넓은 일본 땅에서 오사카 인근의 작은 성 하나를 차지하지 못했다고 해서 막부가 멸망에 이른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것은 가마쿠라 막부에 불만을 품었으나 그 막강함에 숨죽이고 있던 무사들이 5만명의 병력으로 2천명이 지키는 성 하나를 함락시키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막부 군의 무능함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압도적 규모의 군사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가마쿠라 막부가 의외로 약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무사들이 천황 편에 서서 가마쿠라 막부에게 덤벼 들었던 것이다.

‘명망’ 즉 레퓨테이션은 형체가 없다. 신기루와 같아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 만약 그 권력 기반이 레퓨테이션에서 비롯된다면 해당 조직이나 사람은 모든 일에 조심하고 신중을 기해야 한다. 단 한번이라고 약한 모습을 보이면 바로 멸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명성과 힘을 가졌을 때 더욱 조심해야 한다.

◆이솝우화의 사자와 농부 이야기 = <이솝우화>에 사자와 농부 이야기가 있다. 어떤 숫사자가 인간 여인을 사랑하게 되어 여인의 아버지를 찾아가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이 요청을 거절하면 사자가 난동을 부려 가족이 다 죽을지도 모르는 난처한 상황이었다. 농부였던 아버지는 꾀를 내어 사자를 사위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사자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에 가족들이 다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순진한 사자는 곧바로 자신의 이빨과 발톱을 다 뽑아 버렸다. 이빨과 발톱이 없는 사자가 결혼을 청하자 농부는 가족들을 불러 모아 사자를 때려 죽였다.

게임이론 대로라면 사자는 이렇게 답해야 했다. 가족을 위해 이빨과 발톱을 바로 제거하겠다. 다만 결혼식에서 신랑인 제가 이빨과 발톱이 없으면 보기 흉할 테니 결혼식이 끝나자 마자 뽑아버리겠다고. 그리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이빨과 발톱을 뽑으면 안된다. 결혼까지 했는데 이빨과 발톱을 뽑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사자와 같이 죽임을 당한 케이스다.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50대 후반에 낳은 아들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의 통치자가 되었을 때 그에게 패한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오사카 지역의 영주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제거하고자 했다. 그래서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있는 오사카성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이 요청을 거절하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사카성의 공격에 나섰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넓은 벌판에서 치르는 전투에 능했으며, 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는 재주가 일본 최고였다. 오사카성은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직접 쌓아올린 성으로 높고 가파른 성벽에다 성으로 들어가는 길에 함정이 있어 함락시키기 어려웠다. 특히 성을 두겹으로 둘러싼 해자가 있어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내가 공략해도 함락시킬 수 없도록 지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휴전을 제안하고 그 조건으로 바깥 해자를 메우라고 했다. 그러면 히데요리를 그대로 오사카성 성주로 인정하고 전쟁을 끝내겠다고 했다. 히데요리가 이 제안을 받아들여 해자를 메우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대군을 이끌고 오사카성을 쳐들어가 함락시켰다. 히데요리는 자결했다. 히데요리에게 이빨과 발톱은 오사카성을 둘러싼 해자였다.

◆어떻게 주인의식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 구성원의 주인의식이다. 주인의식을 가진 조직은 그렇지 않은 조직을 크게 이긴다. 따라서 경제학의 가장 큰 화두는 구성원들에게 주인의식을 불어넣는 일이다. 어떻게 주인의식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 그 힌트를 프랑스대혁명에서 찾아본다.

중세 유럽의 기사는 철갑으로 감싼 갑옷을 입었고, 어려서부터 무거운 갑옷을 입고 창과 칼을 휘두르는 기술을 연습한 귀족 계급이었다. 중세의 전투는 갑옷을 입고 능숙하게 무기를 다룰 수 있는 기사의 숫자가 승패를 좌우했다. 그러나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날 무렵에는 우수한 성능의 소총의 발명으로 전쟁의 양상이 바뀌었다. 소총을 들고 쏠 수 있는 정도의 힘을 가진 국민의 숫자가 많은 쪽이 전쟁에서 이기게 됐다.

프랑스대혁명으로 프랑스는 왕이나 귀족의 국가가 아닌 일반 국민이 주인인 공화정 체제가 됐다. 프랑스 군대의 병사들은 내가 주인인 나라를 지킨다는 투철한 주인의식으로 전투에 임했다. 게다가 신분의 한계로 출세하지 못했던 평민 출신 인재들이 능력을 인정받아 장교가 됐다. 그리고 프랑스대혁명 당시 프랑스 인구는 러시아, 오스트리아에 이어 많았다. 이런 강점을 갖춘 프랑스 군대는 나폴레옹의 지휘 아래 유럽을 정복하기에 이른다. 나폴레옹은 독재자이고 황제였다. 하지만 프랑스 국민들은 우리가 뽑은 황제이니 괜찮다며 나폴레옹이 지휘하는 전쟁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그런데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 각종 로봇이 등장하면서 다시 상황은 변하고 있다. 조종사 없는 드론 전투기가 하늘을 날고 사람이 아닌 로봇 경비견이 건물을 지키는 세상이 됐다. 미래에는 소수의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용해 전투에 임하는 시스템을 더 빨리 받아들이는 국가가 세계 최강 대국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다시 귀족주의로 돌아설 수도 있다는 얘기다.

◆고르바초프와 ‘또라이 전략’ = 북한은 핵을 쓸 수 있을까? 예를 들어본다. 한 강도가 총을 들고 건장한 남성 30명이 타고 있는 버스에 올라가 돈을 내놓으라고 위협한다. 그런데 그 강도의 총에 든 총알은 한발 뿐이며, 그 사실을 30명이 다 알고 있다. 30명이 한번에 덤비면 총을 발사할까?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똑똑한 강도라면 절대 총을 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강도가 이렇게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 30명의 남자가 강도에게 달려들어 제압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강도가 뭔가 정신적으로 불안하고 쉽게 당황하는 사람이라면 달려드는 남자들에게 마구잡이로 총을 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남성들은 순순히 가진 돈을 내주게 될 것이다. 이 예에서 중요한 건 무기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무기를 든 사람의 정신상태가 더 무섭다는 점이다.

소련의 입장에서 고르바초프는 최악의 지도자였다. 엄청난 핵무기를 가졌지만 미국에 무조건 항복했다. 고르바초프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미국의 지도자들에게 심어줘 스스로 핵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 레이건은 소련이 핵을 사용하면 미국 역시 곧바로 모든 핵무기를 소련을 향해 쏘겠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소련에게 레이건은 핵무기를 사용하고 싶어 안달난 ‘또라이’ 지도자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같이 핵무기를 줄이자는 이야기는 꺼내보지도 못하고 자신들이 먼저 솔선해서 군비 지출을 줄였다.

일국의 지도자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에게도 때로는 또라이 전략이 필요하다. 자신이 약자이고 상대가 절대 강자인 경우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기도 하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비정상적인 정신상태를 가진 사람과의 싸움은 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라이 전략은 자주 쓰면 안된다. 상대방도 또라이라면 사생결단의 싸움이 되기 때문이다.

경제학에는 ‘홀드업’ 문제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여자 친구의 취향대로 모든 것을 바꾼 남자 친구를 과연 여자 친구는 소중히 생각할까. 상대방에 호의를 베풀면 약점이 되어 인질로 붙잡힌다는 것이 홀드업의 의미다. 이처럼 인질이 될까 두려워 사람들이 특정 관계를 위한 투자에 소극적이 된다는 것이 홀드업 문제의 본질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문제를 얘기할 때 홀드업 문제는 중소기업이 인질로 잡히는 것이 아니라 인질로 잡힐까 두려워 대기업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만일 자동차 핸들을 생산하는 모든 중소기업이 홀드업 문제를 두려워 한다면 세계의 모든 자동차가 똑같이 생기고 기능 또한 동일한 핸들을 달고 달리는 세상을 살게 될 것이다. 핸들 뿐만 아니다. 자동차 모양도 똑같고 색상도 똑같으며 헤드라이트의 모양도 똑같은, 특색이 없는 동일한 자동차를 탈 수 밖에 없게 된다. 누구도 인질이 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상호간 인질이 되어 특정 관계를 위한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할 것이다.

◆영림원CEO포럼

영림원 CEO포럼은 2005년 10월 첫 회를 시작하여 매달 개최되는 조찬 포럼으로, 중견 중소기업 CEO에게 필요한 경영, 경제, IT, 인문학 등을 주제로 해당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강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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