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림원CEO포럼] “건축은 부분의 집합체, 한옥은 집합성의 대표적 건축”
[영림원CEO포럼] “건축은 부분의 집합체, 한옥은 집합성의 대표적 건축”
  • 박시현 기자
  • 승인 2022.10.10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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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176회 영림원CEO포럼 강연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아이티비즈 박시현 기자] “건축은 도시의 일부분이자 건물과 건물, 건물과 자연이 집합된 하나의 자연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는 형태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비어있는 공간들과 그 사이의 관계가 건축의 핵심이다. 위대한 건축물은 위대한 집합적 관계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특히 한국의 건축에는 놀랄만한 집합성이 숨겨져 있다."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6일 176회 영림원CEO포럼에서 ‘집합의 건축, 한옥의 풍경’을 주제로 강연했다. 김 교수는 이번 강연에서 “전통적인 한국건축의 집합적인 실체를 발견하고 올바른 체험감상법을 전해주고자 한다. 위대한 집합적 관계를 돌아보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다음은 강연 내용

◆건축, 건물이 아닌 다양한 부분들이 모인 ‘집합체’로 바라봐야 = 집합은 부분과 부분이 모여 전체를 이루는 과정과 관계이며, 집합적 성격은 그 속에 내재된 질서이다. 예술이나 기업, 조직 등은 모두 집합성의 성격을 갖고 있다. 생물학은 집합성이 없으면 그 이론이 성립하지 않으며 음악의 작곡도 음과 음 사이의 관계를 담아 전체를 형성하는 점에서 집합론과 일맥상통한다. 건축도 건물이 아닌 다양한 부분들이 모인 ‘집합체’로 바라봐야 한다. 방들이 모여 건물이 되고 이 건물들이 모여 도시를 이루고, 그리고 이 도시가 자연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건축의 집합체로서의 구조는 완결된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자동차로 알려진 ‘부가티’는 30만개의 부품으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이렇게 고가의 자동차라고 해서 각 부품이 작동하지 않으면 자동차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것은 기계적 집합성이다. 이 기계적 집합성은 이를테면 개인적인 판단을 허용하지 않는 군대를 들 수 있다.

반면 나무와 숲의 관계처럼 유기체적 집합이 있다. 나무는 숲을 이루고 숲은 산을 이루어 계곡과 폭포 등이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이 유기체적 집합을 설명하는 용어로 ‘홀론(Holon)’이 있다. 홀론은 그 자체로 전체이면서 더 큰 전체의 일부이다. 이 홀론은 고대 그리스의 이상적인 집합의 모델이었다.

중세와 현대 도시의 건축을 보자. 중세의 대표적인 도시인 스위스 베른은 모든 건물이 똑같이 생겼다. 건물마다 별 특징이 없는데도 세계적인 관광지로 유명하다. 베론의 건물들은 6층인데 1층은 상점, 2~3층은 사무실, 4~5층은 주택 등으로 상업, 업무, 주거지가 한 건물에 모여 있다. 그런데 평범한 이 건물들이 모여서 낭만적인 도시 풍경을 만들어 낸다. 베른은 전체성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현대적인 도시의 대표로 미국 LA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상업지역을 중심으로 주거지역, 공업지역이 뚜렷하게 구별돼 있다. 매우 기계론적인 구성인데 서울 강남의 모델이 됐다.

근대와 현대의 이 도시들은 기계론적 세계관에 따라 부품과 같이 작동한다. 근대적인 공간 개념은 근대 수학의 기본이 된 데카르트의 직교좌표에 기반한다. 직교좌표는 세상의 모든 공간을 XYZ좌표로 표현한다. 문제는 각 공간의 위치는 있지만 각 공간의 성격이 없어 다 똑같이 생긴 공간을 연출한다는 점이다. 바로 수학적 공간개념이 가져온 생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직교좌표 체계로 만들어진 도시로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를 들 수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비행기처럼 생긴 브라질리아는 2년만에 철저한 계획에 따라 건설됐다. 반대로 집합체적 성격의 건축을 보여주는 곳이 모로코의 페즈다. 30만 인구의 페즈는 중심지역이 없고 모든 집이 다 똑같이 생겼다. 길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이 도시는 자동차가 못 들어가고 당나귀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전체성 가지면서 확장되는 구조의 ‘한옥’, 세계상 유일 = 이제부터가 오늘 강연의 본론이다. 전남 구례에 ‘운조루’라는 한옥이 있다. 이 집의 주인은 영남의 양반으로 전라도에서 관리로 지내다가 이곳에 정착한 인물이다. 그가 이 집을 그렸는데 그 그림이 <전남구례오미동가도>이다.

전남구례오미동가도
전남구례오미동가도

<오미동가도>에는 13채의 기와집이 그려져 있다. 이 건물들이 그려진 방식이 특이하다. 건물의 방향을 위아래로 세워 그리거나 어떤 건물은 옆으로 또 어떤 건물은 뒤집어 그렸다. 특이한 것은 2~4채의 건물이 하나의 마당을 향해 있는데 이 건물들이 그 마당 소속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건물의 중심은 비어있는 마당이며 건물들은 마당을 둘러싸기 위한 시설에 불과하다. 운조루는 바깥사랑 마당, 안사랑 마당, 안마당, 책방 마당, 곳간 마당, 사당 마당 등 6개의 마당으로 이뤄져 있다.

이 그림은 담장 바깥의 지리산 천왕봉과 대문 앞의 섬진강도 담고 있다. 산과 강의 대자연이 운조루의 소속으로 그려져 있는 셈이다. 건축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한옥의 자연관을 <오미동가도>는 뚜렷하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부분이 전체를 이루고 그 전체가 또 다른 전체의 부분이 되는 식으로 자꾸 확장되는 복잡한 전체적 구조의 운조루는 세계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사례다. 운조루는 한옥에서 발견되는 부분과 전체를 잘 보여준다. <오미동가도>는 진본을 도둑맞아 현재는 복사본만 남아있다.

강원도 강릉의 선교장은 건물 9동, 102칸으로 이뤄진 큰 규모의 집으로, 그 규모를 떠나 그 구조가 양파처럼 중첩적이고 복잡하며 다층적 구조 속에서도 여러 건물들의 질서가 잘 잡히고 조화된 집합체로서 단아한 통일체를 나타내는 점이 돋보인다.

경북의 예천권씨 초간종택과 초간정은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 성격이 다르다. 초간종택은 살림살이를 하는 주택이며, 초간정은 자연과 어울려 노는 별장이다. 건축이 어느 공간에서 어떠한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남 진주의 촉석루와 밀양의 영남루는 관에서 표준 설계한 것으로 모습은 똑 같지만 차이점이 있다. 촉석루는 강에 접근할 수 있지만 영남루에서는 강을 바라만 볼뿐 갈 수 없다. 이러한 차이는 건물이 속한 환경에 따라 달리 설계됐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의 건물로 별로 기억에 남는 게 없다. 특징이 없다. 그 이유는 관계성이 없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는 완벽하지만 부분이 전체에서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 파편적 건물로 남아있을 뿐 모두 어우러진 전체성이 버라이어티하게 펼쳐지지 못한다.

한옥, 허와 실의 조합과 음양의 구조 갖춰 = 관계성은 한옥에서 발견되는 주요한 특징이다. 한옥의 가장 큰 특징은 한 동의 건물이 아니라 여러 동의 건물이 집합되어 있으며, 채와 채 사이에 마당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마당은 외부 공간이면서도 지붕이 없는 방처럼 내부 공간이다. 마당을 막는 순간에 한옥은 좁아진다. 한옥은 방이 있으면 반드시 마루가 있고 마루가 있으면 그 옆에 방이 있다. 또 건물이 있으면 그 건물에 상응하는 마당이 있어 짝을 이룬다. 음양의 구조를 띠고 있는 셈이다.

서애 유성룡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은 한옥의 특성인 집합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 건축이다. 물질의 최소 단위가 분자이듯이 한옥의 최소 단위는 방과 마루, 채와 마당이 한 쌍의 조합으로 존재한다. 음양의 구조로 따지면 방, 채가 차있는 양이라면 마루, 마당은 비어있는 음이다.

병산서원은 바로 차있는 곳과 비어있는 곳 즉 허와 실의 조합을 여실히 보여준다. 차있는 곳과 비어있는 곳은 서로 생성의 관계를 만들며 질서를 형성한다. 병산서원의 만대루는 7칸의 매우 좁고 기다란 구조로 이상한 건물이지만 병산서원의 집합적 질서가 축약돼 있다. 만대루 위에서 앞의 병산을 쳐다보면 7폭의 병풍산이 된다. 곧 병산서원의 건축적 가치는 그 건물의 구조나 형태에 있지 않다. 자연환경과의 관계성 속에서 엮어내는 다양한 장면들에서 그 가치를 찾아야 한다.

서양인들은 이러한 한옥의 집합성을 이해하지 못하며 건물이 중심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한옥은 차있는 곳과 비어있는 곳이 서로 공존하는 공간이다.

경북 안동의 화회마을은 자연과의 집합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하회마을은 강이 돌아가는데 산이 막아서 그러하다. 마을의 집들은 질서없이 삐뚤삐뚤 배치돼 있으며 일정한 방향이 없는데 주위에 있는 10여개의 봉우리를 바라보는 위치가 집집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질서 속에 숨어있는 질서가 있는 것이 회회마을이 명소가 된 이유다. 아름다운 것은 우연이 없으며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모를 뿐이다. 서울 강남의 건물은 옆의 건물과 관계를 맺으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가 전체가 되려고 한다. 스위스 베른처럼 집합적 아름다움이 없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한옥 붐이 일고 있지만 한옥을 현대화하지 못하면 한 때의 유행으로 끝나버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외부는 한옥에다 내부는 현대적으로 만든 울산 현대 영빈관, 경주 삼표 별장 그리고 한옥과 현대건축이 공존하는 벽제 아모레퍼시픽 기업 추모관, 서울 아름지기재단 사옥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서울 아름지기재단 사옥은 마당을 통해 한옥과 현대건물이 관계를 맺고, 주변과의 관계성을 잘 드러낼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다양한 풍경을 가진 건축이 됐다.

요약하면 한옥은 집합성의 대표적인 건축이라는 사실이다. 건축할 때 건물 설계에만 집착하는 것은 하수다. 집합과 환경을 고려한 설계를 해야 한다. 한 그루의 소나무는 자체적으로 빈약해 보이지만 소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면 전체적인 힘과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영림원CEO포럼

영림원 CEO포럼은 2005년 10월 첫 회를 시작하여 매달 개최되는 조찬 포럼으로, 중견 중소기업 CEO에게 필요한 경영, 경제, IT, 인문학 등을 주제로 해당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강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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